글/단편

[이치카라] 사랑한다는 말

긔디 2021. 2. 15. 09:55

니트니트 42 / 3기 피자편 보고... 이치카라에 비벼먹기

퇴고하지 않고 가볍게 작업해서 오탈자가 많을 수 있습니다. 조금 적폐캐해, 이치마츠가 좀 순한 편이긴 하지만 여튼 이치카라임.


사랑해?

 

이치마츠는 종종 물어보곤 하였다. 맨 처음에는 낯부끄러워 잘 담지도 못했던 단어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카라마츠, 나 사랑하냐? 그럴 때마다 카라마츠의 반응은 똑같았다. 깜빡, 눈꺼풀이 눈알 위를 한 번 덮었다가 걷힌다. 시선이 도륵, 굴러 저와 꼭 닮은 얼굴에 고정되고, 찰나동안 입매가 굳으며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 다음에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가고, 흰 치아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눈가에는 익숙한 주름이 접히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 아닌가, 브라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딱 거기서 끝나면 좋을 텐데. 카라마츠는 굳이 이치마츠의 곁으로 슬쩍 몸을 붙이며 말을 늘이곤 하였다. 왜, 내가 우리 kitty를 불안하게라도 하였는가~? 하항? 빙고? 걱정 마라, 이치마츠. 나에게 형제는 다섯일지라도 연인은 한 명 뿐이니. 시끄러워, 쓰레기가. 습관적으로 퉁명스럽게 나오는 대답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치마츠와 은근슬쩍 깍지를 꼈다. 그런 카라마츠의 온기가 좋아서, 그의 미소와 든든한 신뢰가 좋아서, 이치마츠는 종종 물어보곤 하였다. 사랑해?

 

아직도 기적이라 생각했다. 카라마츠가 자신을 사랑하는 게 거짓말임이 틀림없다고 몇 날 며칠동안 의심했다. 나 같은 걸 왜 좋아해. 무직에다가, 얼굴도 똑같은 쌍둥이에다가 음침하고 자존심도 없는 나를. 아, 그런 건가? 자기애?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얼굴이 똑같은 나도 OK? 하지만 그런 걸로 치면 오소마츠나 쵸로마츠도, 쥬시마츠나 토도마츠도.... 정말 나를 사랑해? 진심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세계가 4번하고도 2번 더 멸망해도 일어날 리 없는 이 기적을. 한참동안 속에서 곪다가 드러난 상처는 날카로움과 애처로움으로 똘똘 뭉쳐 카라마츠에게 쥐어졌다. 쿠소마츠, 야, 너 진짜 나 사랑해? 아마 그때도 자신을 바라보는 카라마츠의 표정이 꽤 무표정했다고, 이치마츠는 기억했다. 속내를 쉬이 알 수 없는 무표정 위로 천천히 미소가 꽃피어나고, 평소 힘주어 각진 눈썹의 양끝이 아래로 처지며 순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그러고선, 그는 말했다. 당연히 사랑한다, 라고.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우습게도.

 

그런데도 계속, 자꾸, 거듭하여 물어보는 이유는 하나였다. 사랑한다, 그 고백을 읊으며 웃기 직전, 스쳐지나가는 무표정의 의미를 알 수 없었기에. 사랑하냐는 질문과는 달리 이건 쉽사리 해소할 수 있는 의문이 아니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라고 물어보기에는 눈 깜빡하면 사라졌고, 그렇다고 해서 정말 나 사랑하냐, 고 구질구질하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사랑한다는 말에 안식을 얻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함에 시달렸다. 정말 사랑하냐고, 그럼 그 표정의 의미는 뭐냐고. 그라고 해서 카라마츠를 온전히 믿기 싫은 게 아니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에게 안정을 가져왔으나, 그 안정은 길면 하루, 짧으면 몇 분만에 사라졌다. 심호흡 몇 번만의 안정 사이에서, 그는 늘 불안함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았다. 지긋지긋하게도. 그런데도 카라마츠는 질리지 않고 연인에게 속삭인다. 사랑한다, 당연히 사랑한다, 라고.

 

결국, 평화를 깬 건 이치마츠였다. 평화를 깨는 건 언제나 이치마츠였다. 물어보는 쪽도, 먼저 고백한 쪽도, 불안해 하는 쪽도. 만약을 수십번 상정하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홀로 진절머리나게 괴로워 하는 것도 이치마츠였다. 단순한 성격의 문제만은 아니리라. 아마, 좀 더 깊은 문제는....

 

"카라마츠, 날 사랑해?"

 

곧은 일자로 뻗은 눈썹이 잠시 미동도 없다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입술이 잠시 벌어졌다가, 곱게 웃는다. 평소보다 조금 더 낮은 목소리, 상냥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는 답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치마츠는 괜히 제 옷깃을 매만졌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도 될까, 고민하는 사이 질문은 이미 그의 입술 밖으로 뛰쳐 나온다.

 

"진짜?"

 

"응?"

 

여태껏 카라마츠의 말을 되물어본 적은 없다. 어차피 물어봤자 똑같은 답이 나올 게 뻔한데. 그런데도 이번에는, 물어본다. 진짜? 무슨 답을 원했는지는 자기 자신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똑같은 대답, 똑같은 확신. 그쯤이었어도 괜찮았으리라.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확신을 심어줄 것. 그쯤이면 괜찮을 거라고.

 

"...못 믿으면서 왜 물어봐?"

 

낮은 한숨이 고요를 깨트리고 방안을 가득 채운다. 카라마츠는 들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고, 이치마츠를 똑바로 응시했다. 새카만 시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선의 일렁임에 이치마츠의 속도 함께 울렁인다. 역시 물어보는 게 아니었나, 근데 그렇게 화낼 일인가? 카라마츠가 만약 사랑하냐고 물어본다면, 이치마츠는,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 사랑해. 아마 실제로 인정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시도가 걸릴 터였다. 처음 대답은 왜 물어봐, 같이 퉁명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 다음 대답도 네 알 바냐, 같이 까칠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그 끝에는, 결국에는, '사랑해'가 있을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진실이자 사실이었으므로. 그러나 카라마츠는 묻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선언했고.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처음으로 이치마츠에게 먼저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지겹지도 않나? 어차피 못 믿으면서, 왜 자꾸 물어보냐고 물었다."

 

"아니, 나는... 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할 건가? 왜 사랑하지 않느냐, 받아달라, 동생의 소원인데 그것도 못 들어주냐, 온갖 핑계를 대면서 매달리겠지. 어차피 원하는 답은 하나잖아. 귀찮게 힘낭비하기 싫어서 원하는 답을 말해줬는데, 뭘 더 바라는가?"

 

이치마츠는 뭇내 깨닫는다. 찰나의 무표정, 그건 귀찮음이었다. 기계적인 대답, 그리고 선언. 당연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런 것 따위가 궁금할 리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관심 없는 상대에게는 성실한 대답조차 사치였다. 이치마츠 홀로 의심하고, 질문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역시 그 혼자였으므로. 카라마츠는 딱딱하게 굳은 이치마츠를 보며 다시금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꿰뚫는 그 어떤 총성보다도 더 요란하고, 크고, 치명적인 음절이었다.


보통... 이렇게 차이고(?)

이치마츠가... 쓰레기공이 되죠

어케든 카라마츠가 날 사랑한다는 착각을 붙잡고 건강한 연인생활 유지하려다가 결국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 흑화하고 쓰레기짓 하는 이치마츠가 좋다.

다정하지만 결국 무관심이고 상냥하지만 내면에 선을 그은 카라마츠가 좋다. 쌍방도 좋지만 짝사랑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