긔디 2020. 1. 20. 16:21

주탄동자 오소마츠 X 사변 카라마츠


    신사에 정적이 흘렀다.

    주탄동자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를 떠나보내는 와중에도 내심,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카라마츠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놓지 못했던 것이다. 구미호의 예언만 피해간다면, 결국 언젠가 카라마츠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집에 간다면 다시 형제들을 만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자신에게 좋게 예언을 끼워 맞췄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랴. 결국 예언은 알아봤자 피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절절히 느낄 뿐이었다. 일부러 대텐구에게까지 부탁은 했건만. 들어주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씁쓸히 느껴지는 배반감은 어쩔 수 없었다.

    오소마츠와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곁에 있는 남자가 조금 전에 본 대텐구와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째서 닮은 것인지, 그 둘이 있다는 건 다른 형제들도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눈앞에 카라마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곁에 납치법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카라마츠 형!"

    "카라마츠!"

    둘은 거의 동시에 카라마츠를 외쳤다. 그들을 본 카라마츠의 눈에 크게 뜨인다. 마치 그들이 왜 여기 있냐고, 어째서 온 것이냐고 물어보는 듯 했다. 어떻게 왔는지 보다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은 반응에 토도마츠의 가슴이 쿡쿡 아파온다. 서러움도 있었고 죄책감도 있었다. 카라마츠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놀란 표정보다는 반가운 표정을 지어주면 좋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오소마츠? 토도마츠? 여긴 어떻게 온 건가? 혹시……."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의 요괴로 향한다. 주탄동자는 양 손을 들고서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온 몸으로 억울함을 표현했다. 오히려 저들이 안 왔으면 싶었는데 오히려 와버리니 속상하기 짝이 없었다. 속상하기는 오소마츠와 토도마츠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개고생을 해가며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그 공이 홀라당 처음 보는 놈팡이에게 넘어가는 건 사양이었다. 그 놈이 오소마츠와 매우 닮았다 하더라도.

    "카라마츠 형, 저기 저 놈은 누구야? 그리고 지금까지 쭉 여기에 있었던 거야? 계속 찾았는데!"

    토도마츠는 냉큼 앞으로 달려 나가 카라마츠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입혔던 상처도, 다른 상처도 없이 말끔한 몸이었다. 부러진 다리가 그렇게 빨리 낫던가, 의문이 들었지만 제 형이 괜찮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뒤따라온 오소마츠가 토도마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화를 내기보다는, 먼저 해야 할 말들이 있었다. 그걸 자각한 토도마츠는 서둘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찾는 내내 할 말이 많았는데, 적장 눈앞에서 카라마츠를 보니 되뇌던 모든 단어들이 목구멍 너머로 쏙 들어갔다. 한참을 어물거리던 그가 고른 단어는 그가 생각했던 자연스럽고 유쾌하며 산뜻한 사과와는 거리가 꽤 먼 것이었다.

    "그…… 미안해. 형한테 함부로 대한 것도, 물건들 집어던진 것도, 신경 잘 안 쓴 것도……. 다, 미안해. 쭉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어."

    "토도마츠."

    "그,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해할게. 하지만 돌아오면 좋겠어. 다들 보고 싶어 해. 쥬시마츠 형도, 쵸로마츠 형도, 그 음침한 이치마츠 형까지. 하지만, 하지만! 돌아오고 싶다면 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토도마츠!"

    또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으며 횡설수설하는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단박에 끊긴다. 단호한 어조에 그는 답지 않게 주눅 든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카라마츠를 잡았다. 조금 전 토도마츠가 그랬듯, 다친 곳은 없는지, 야윈 건 아닌지 살펴보았다. 제 막내 동생이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정말로 오랫만에 보는 카라마츠의 상냥한 표정에 토도마츠는 눈가가 시렸다. 다들 보고 싶어 해. 쥬시마츠 형도, 쵸로마츠 형도, 이치마츠 형도, 그리고 나도. 입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마중 나와 준 건가. 고맙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응……."

    "마침 나도 슬슬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 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있을 자리가……."

    카라마츠의 시선이 주탄동자를 향한다. 입가에 걸린 미소와 달리 눈은 짙은 씁쓸함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흔들지 못할 결연함도 담고 있었다. 가슴 한 편이 쿡쿡 쑤셔서, 주탄동자는 시선을 돌려버린다.

    "내가 있을 자리가, 여기는 아니니까."

    "정말, 정말 돌아가는 거지? 진짜지?"

    "이야, 다행이네~. 토도마츠가 말은 이렇게 했어도, 그냥 두고 왔으면 형아 쵸로마츠에게 완전 혼났을걸! 살았다!"

    오소마츠가 넉살 좋게 웃으며 카라마츠 곁에 걸터앉았다. 반대편에 서 있는 도깨비의 시선을 눈치 못 챈 척, 그는 태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너 찾으려고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알아? 해외로 나간 건 아닌가 생각도 했다니까. 근데 우연히, 정말 우연히 토도마츠 친구가 널 봐서 말이야, 안 그랬으면 평생 못 찾을 뻔~!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던 오소마츠는 이내 히죽 웃었다. 스스로를 뿌듯해할 때마다 코 밑을 개구쟁이처럼 문지르는 습관은 아직도 바꾸지 못했다.

    "그런 그렇고, 저기 곁에 남자는 누구야? 이 카리스마 레전드 형아랑 엄-청 닮았는데 말이죠~. 요괴 맞지?"

    "아, 알고 있었나? 어떻게……. 아니지, 이 분은 주탄동자라고 한다. 지금까지 날 보살펴줬지."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서 퉁명스러운 시선이나 던지는 주탄동자는 꼭 그 꼴이 심술 난 어린아이였다. 안 그래도 카라마츠와 헤어져야 할 생각에 기분이 싱숭생숭한데. 카라마츠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으니 대놓고 싫은 티는 못 냈지만, 억지로 웃을 수도 없었다. 일종의 어리광이었다. 카라마츠가 자신의 기분을 눈치 채고서 사과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니,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헛된 바람들은 괜히 그의 심장 안에 공기를 후후 물어넣었다. 어쩌면, 이라고 희망만이 드높아지도록. 지금까지 우리 집 차남을 보살펴줘서 감사함다, 능청스럽게 권해진 악수를 무시한다. 카라마츠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져도 그는 부동하지 않았다.

    "하, 하하! 이 사람이 원래 이렇지 않은데. 수줍음이라도 타는 건가, 카라마츠 보이?"

    "아온안…… 아니, 카라마츠."

    "으응~? 왜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야. 늘 배은망덕하고 까먹고 자기중심적이지. 지금 저렇게 후회해도 또 안 그럴 것 같아? 분명 까먹을걸. 그리고 넌 또 상처 입을 거야."

    저 요괴가! 자기 마음대로 지껄이지 마! 왁왁 소리 지르는 토도마츠를 가볍게 무시하며 주탄동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붉은 두 눈에는 온전히 카라마츠만이 담겨 있었다. 푸른색 후드, 좀 낡아진 청바지. 머리카락이 조금 길었으려나. 몸은 붕대도 흉터도 없이 깨끗하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가 온 첫날의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두 달 조금 넘었나, 세 달을 채우고 있었던가. 형제들에게 상처받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게 아직도 이리 생생한데. 손을 뻗는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에는 차가운 아침 공기만이 닿았다.

    "카라마츠, 가지 마. 요괴는 인간과 달라. 난 널 다시 상처 입히지 않아."

    "알고 있다."

    카라마츠는 웃는다. 고개를 돌려 형제들에게 말한다. 토도마츠, 오소마츠. 잠시 나가 주겠나. 곧 따라 나갈게. 약속한다. 그의 형제들은 잠시 항의하다가 이내 순순히 밖으로 나섰다. 카라마츠의 고집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주탄동자가 알고 있듯이. 알고 있음에도 그는 매달린다. 눈앞에서 다시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은 그의 영혼을 좀먹는다. 카라마츠의 결정도, 구미호의 예언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음을 알리고 있었으나 그는 야속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토도마츠와 오소마츠가 신사 밖으로 나서자, 카라마츠는 나직하게 말을 시작했다.

    "당신과 지낸 시간 동안 정말 행복했다, 주탄동자. 아마 내 삶 중에서 그런 다정한 사랑을 다시 받을 일은 없겠지."

    "알고 있다면-"

    "하지만 그건 늘 아오안돈을 향한 거였지, 안 그런가?"

    알고 있었다. 곱게 휘어지는 눈초리에 주탄동자는 목소리를 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 미소에서 아오안돈을 보고 있었음으로. 하지만 정말 그만을 쫓았을까. 아오안돈이라 사랑하였으나, 그게 전부였을까. 가슴께가 아려왔다.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 주탄동자, 이걸 알게 된 이상 마음 편히 당신 곁에 있을 수 없더라고."

    "아냐, 틀려. 난 확실히 아오안돈을 사랑하긴 했더라도, 지금은……."

    "나, 조금 더 스스로를 사랑해 보려고 한다."

    이상적인 형인 내가 아닌, 당신의 연인이 아닌, 그저 나를. 사랑받지 못하여 울던 나를, 버림받고서 외로워하던 나를.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찾아올게. 그게 이 생이 될 수도, 아니면 다음 생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결국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미래에도 늘 당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주탄동자 당신이 날 찾게 된 것처럼."

    카라마츠는 손을 뻗어 주탄동자의 뺨을 쓸었다. 인간보다 살짝 더 뜨거운 피부를 어루만지고 일그러진 그의 눈매를 꾹꾹 눌러 폈다. 이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단지 입술과 입술만이 닿은, 어린아이들이나 할 법한 입맞춤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온기도 아쉬워서, 주탄동자는 입술을 매만졌다.

    "날 다시, 찾아와주지 않겠나, 주탄동자?"

    "꼭 찾아내서, 다음번에는 놔주지 않을 테니까."

    떠나가는 카라마츠를 주탄동자는 따라가지 않았다. 더 이상 곁에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했다. 아오안돈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으나 그 모양은 달랐다. 카라마츠가 온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주탄동자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실연 놀리려고 왔어? 구미호, 대텐구."

    "아니, 그닥……. 의외로 순순히 보내줬다 싶어서."

    "너처럼 매달리는 남자는 매력 없다고, 대딸딸텐구?"

    "누가 대딸딸텐구인데! 애초에 그거 너 어디서 들었어?!"

    날개를 퍼덕이며 항의하는 대텐구를 가볍게 무시하며, 주탄동자는 구미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이미 텅 빈 신사의 입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겠지, 비록 싫은 티를 냈어도 아오안돈에게 큰 정을 붙이고 살았는데. 많이 안타까울 것이다. 결국 쫓아낸 게 자신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있을 테고. 자신의 형제들 중에서도 구미호는 유독 아오안돈을 잘 따랐다. 겉으로는 피했어도 말이다. 외로움을 잘 타는 그에게 상냥하고 너그러운 아오안돈은 거절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 번 자기혐오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가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기 전에 주탄동자는 그의 눈앞에서 박수를 짝, 쳤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구미호의 몸이 떨리며 꼬리가 부풀어 오른다.

    "뭐. 왜. 뭐."

    "그거 알아? 카라마츠가 날 보고 다시 찾아달라고 하더라."

    엄연히 따지면 그거, 예언 틀린 거 아님? 별 일이 다 있네. 뭐가 좋다고 싱글생글 웃는 주탄동자를 보며 구미호는 제 여덟 꼬리로 스스로를 감쌌다. 자존심이라도 상했는지 주탄동자를 보는 시선이 심상찮았다.

    "결국 '아오안돈'을 잃은 건 맞잖아. 그래도 괜찮은가 보네?"

    "괜찮을 리가 없잖? 당연히 슬프지. 너무 슬퍼서 지금 눈물이 멈추지 않는데? 그래도, 다시 만날 테니까. 아오안돈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아오안돈이 아니더라도. 다시 만날 테니까."

    아침 태양이 마침내 나무들을 헤치고 나와 숲의 꼭대기에 선다. 찬란한 온기는 얼마 지나기 않아 후덥지근한 열기가 되어 만물을 비출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지친 태양은 다시 땅에게 입맞춤을 선사하고 떠나가겠지. 그들이 만났던 때와 같은 노을만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마지막으로 기나긴 밤이 지나면, 다시금 동이 틀 것이다. 삶은 태어나고, 웃고, 울고, 죽는다. 인연들은 만나고, 엮이고, 끊어지고, 헤어진다. 생이란 순환의 반복이고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기에, 주탄동자는 믿는다. 다시금 노을이 질 때,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이노라. 그리고 이번에는 끝내지 못한 사랑을 할 것이노라.

    동이 튼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마침표가 찍어진다.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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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장편 완결냈네요! 오소마츠상으로 장편 완결은 처음이고요. 작년 6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이제야 끝을 냈어요....ㅋ... 긴 시간에 걸쳐 썼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주신 분들 다 너무 감사합니다. 빨리 완결짓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끝을 냈다는 것에 이의를 두려고요.

이야기 내 이해가 안 갔을 설정 몇몇을 이 후기에서 써보려고 합니다. 요괴마츠들은 아오안돈 제외, 전원 같은 "어머니" 아래서 탄생한 요괴들입니다. 그래서 서로 형님동생 하면서 사는 거고, 얼굴도 비슷하단 설정이죠. 아오안돈은 나중에 주탄오소가 만들었는데, 스스로를 본따 만들었음으로 얼굴이 비슷하게 되었단 설정입니다. 만들어진 순서로 따지자면 막내이지만 장남 주탄오소의 반려이기에 차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아오안돈이 인간들에게 죽임당하고 나서, 주탄오소는 다른 형제들에게 부탁하여 아오안돈을 다시 되살리려고 했어요. 물론 수포로 돌아갔고, 그 주술에 쓰인 영혼조각들은 아오안돈과 함께 환생하여 현재의 육둥이가 되었습니다. 영혼조각들은 본체와 다른 의지를 지니고 있는 개별의 존재들이 되었지만, 본체가 본체인지라 요괴라던가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습니다. 현대화 된 사회에서 요괴들은 드무니까 알 일은 없었지만요.

또, 죄송한 게... 제가 열린결말을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이게 열린결말이네요. 띠용. 하지만 뭐, 둘이 나중에 환생이든 뭐든 다시 만나 행복하게 잘 살지 않았을까요? 분명 잘 살았을 거에요. 나름의 해피엔딩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질문들은 댓글이나... 트위터 멘션으로 물어보심 답해드리겠습니다. 다음 글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