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라] 신혼여행은 몰디브로
돈 이치마츠 X 마피아 카라마츠
끝 부분에 오지상 이치마츠 X 마피아 카라마츠 암시 있음
"그래서, 우리 결혼식은 언제 올릴래."
"잠깐, 뭐라고?"
바쁘게 일하는 사람을 기껏 불러서 한다는 말이 저딴 미친 소리라니. 제 앞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사내를 카라마츠는 황당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다행이도 선글라스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었다. 어렸을 때 마피아에게 거두어진 그가 맡았던 일은 자신보다 4살 어린 차기 돈을 보살피는 것. 그러니까, 이치마츠를 엎어 키우다시피 한 것이 카라마츠였다. 비록 피는 안 섞였더라도 형제보다 더 진한 유대를 지니고 있는 그들이었다. 당연히 이치마츠를 자신의 친한 동생 이상으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 지나치게 일이 많았던가, 요즘. 카라마츠가 답을 주지 못하고 뜸을 들이자 이치마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결혼식 말이야. 내가 성인이 된 지도 2년이 넘었어. 준비 할 시간은 많이 줬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준비고 자시고 애초에 언제 결혼 약속을 했었는가?"
"했었잖아? 얼마나 멍청해야 결혼 약속을 까먹는 거냐, 이 망할 마피아."
그러니까, 대체 언제?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마츠가 자신에게 프러포즈 한 적은 없었다. 아니, 딱히 다정하게 대해 준 기억 자체가 없었다. 설마 그 때 일을 말하는 건가. 기억하려면 자그마치 14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그 때의 이치마츠는 아직 볼살이 빠지지 않아서 통통하니 귀여웠다. 동그란 눈을 뜨고서 카라마츠의 허리에 매달리면 떼어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앞니가 빠져서 새는 발음으로 그는 말하곤 했다. 카라마츠, 내가 어른이 되면 나랑 결혼해 줘야 해. 카라마츠는 웃으면서 대답하곤 했다. 그래, 그래. 진지하진 않았다. 정말 어른이 되면 벗어날 어린 날의 치기라고 여겼다. 근데 그 일을 아직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에이, 농담이지. 애써 웃었지만 이치마츠의 표정은 변치 않았다. 설마 진심이야? 선글라스를 낚아채서 벗고 이치마츠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었다. 선글라스를 쓰든 말든 이치마츠의 표정은 외면할 수 없는 진심이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서 선글라스를 가슴팍에 꽂는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담. 잘못하면 그의 머리통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신중해야 했다.
"저기, 돈. 구질구질한 남자는 매력적이지 않-."
탕! 서늘한 바람이 카라마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벽이 어떻게 됐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만 비껴갔더라면 박살난 건 그의 머리였겠지. 어떻게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일단 지금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가 한 가득 지어진다.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돈이 구질구질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신혼여행은 어디가 좋겠나? 몰디브로 갈까? 아니면 역시 하와이?"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
그래서 식은 언제 올릴래. 끈질긴 질문을 무시하고서 카라마츠는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역시 옷은 둘 다 흰 턱시도가 좋겠지? 돈은 흰 정장이 어울리니까. 우리 예물은? 신혼집은? 우리 예식장은 어디가 좋을까, 나 이왕이면 밖에서 하고 싶다. 요즘은 그게 트랜드 라더군! 빙글빙글 돌면서 발걸음은 충실히 문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일단 도망가면, 조금이라도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손이 문고리에 닿는 순간, 총성이 다시금 방 안에 울렸다.
"……날짜."
"다, 다음 달…… 어때!"
다시 총을 장전하는 이치마츠의 모습에 카라마츠는 서둘러 말을 바꾼다.
"역시 빠를수록 좋지! 우리 바로 다음 주에 식 올릴까?"
상쾌한 시골 바람이 카라마츠를 맞이한다. 간간히 섞인 비료 냄새와 텁텁한 먼지에 미간이 구겨진다. 산은 다 좋은데 이런 게 싫다니까. 가만히 툴툴거리다가 이내 짐 가방을 돌돌돌 끌고서 마을을 향해 걸었다. 신혼여행은 몰디브라니, 웃기지도 않지. 자신이 바다를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치마츠가 어떻게 발악을 하든, 카라마츠가 직접 교육하고 기른 꼬맹이였다. 그가 생각하는 방식 따위는 손바닥 위를 보듯 훤하게 알 수 있었다. 보통은 자신이 바다를 싫어하니 산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치마츠라면 도리어 그 허를 찔러서 바다로 내려갔으리라 추측하겠지. 그러면 자신은 그 허의 허를 찌르면 된다! 이 얼마나 명석하고 유능한 인재의 완벽한 계획인가!
돈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가 싫은 건 아니었다. 돈의 기둥서방이 되어서 핑핑 놀면서 부하들이나 괴롭히면 좋지. 하지만 굳이 도망친 이유를 따지자면, 돈이 너무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얼굴은 봐줄 만 했다. 하지만 성격이며 몸매는? 카라마츠의 취향은 좀 더 어깨가 넓고, 듬직하면서 근육이 넘치는 남자였다. 성격은 무심해 보여도 배려심이 많아야 했다. 외관이든 내면이든 이치마츠는 절대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차에, 저 멀리서 사람이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키가 꽤 큰 것이, 참 튼튼해 보이는 사내였다.
"저, 이번에 하숙하기로 하신 분이신...?"
카라마츠의 입이 떡 벌어진다. 어떻게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상형이지? 적어도 외관은 그랬다. 튼실한 팔뚝 하며, 조각처럼 잘 짜 맞추어진 근육이며. 놀란 그가 움직이지 못하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짐 가방을 뺏어 들었다.
"오래 여행하셔서 피곤하실 텐데, 짐 저 주이소. 제가 집까지 들고 가겠슴더."
상냥하기까지 해. 카라마츠의 심장이 쿵, 쿵 뛰었다. 어쩜 이렇게 완벽하지. 홀린 듯, 카라마츠의 입이 열렸다.
"저기, 우리 신혼여행은 몰디브로 갈래요?"
"예?"
상쾌한 시골 바람이 불어왔다. 그 향이 그렇게 기분 좋고 달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