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단편

[오소카라] Like Me, Like You

긔디 2020. 12. 23. 12:12

월간 오소카라 12/23일 작업물입니다.

18오소카라 -> 니트니트

다들 오카해주세요S2

 

 

    카라마츠는, 동경하는 것들을 따라하곤 하였다. 그러면 자신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오자키가 좋아서 가죽 재킷과 기타를 샀다. '멋져지고 싶다'고 결정한 이후, 그는 나름대로 사회성이 좋았던 - 적어도, 혼신을 다해 그렇게 연기했던 - 고등학생 때의 이치마츠를 따라 했다. 과장된 웃음, 행동, 쉽게 주눅 들지 않는 태도. 남자다움을 추구하게 되자 패션 잡지에서 나오는 모델들을 따라 하며 무게를 잡았다. 겨우 따라 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최선을 다해 외면했다. 적어도, 오소마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람들이 안쓰럽다고 하는 건, 그저 그의 태도가 쪽팔려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어설픈 흉내가 안타까워서, 그런데도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가 구슬퍼서 툭툭 내뱉는 비수였다. 제발 그만 좀 해! 토도마츠가 때로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건 카라마츠 뿐일 터였다.

 

    카라마츠의 잘못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닮고 싶은 건, 모두가 품은 욕망이 아니었던가. 어렴풋이 자신이 저리될 수 없기에 동경하는 걸 알면서도, 욕심내는 게 인간이 아니었던가. 흉내를 내는 건 카라마츠 뿐만이 아니었다. 쵸로마츠도 그 누구보다 백수인 주제에 자기 혼자 건실한 척, 진심으로 취직하고 싶은 척 굴었으니까. 게다가, 서로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도 아닐 터였다. 그래도 은근슬쩍 조언을 해주긴 했었다. 굳이 달라지지 않아도 돼, 카라마츠, 라며. 너를 세상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세상을 너에게 맞추면 되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도 지나치게 달랐으니까. 적당히, 설렁설렁, 최소한의 노력으로 뒹굴뒹굴하는 삶을 추구하는 오소마츠와 열정적이며 매사에 진심인 카라마츠와 정반대였다. 붉고 푸른 그들의 색채처럼.

 

    가끔,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색이 잘못 배정된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는 붉은색을 좋아했다. 주인공의 색이고, 영웅의 색이고, 무지개에서도 첫 번째 색이고. 그는 장남이니 당연히 붉은색이 어울리지 않나, 싶었다. 다만 열정적이라던가, 진심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그런 낯부끄러운 요소들 역시 붉게 물들어있지 않았던가. 시원한 파란색과는 도통 어울리지 못하는 묘사들이었다. 그런데도 카라마츠는 파란색이 어울렸다.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포근한 파란색이 카라마츠를 정의했다. 이럴 때마다 오소마츠는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카라마츠가 바뀔 필요는 없다고.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푸른 망토를 걸친, 자신의 동생이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모습을 뒤집어쓰려고 아등바등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도 불만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몇 시간이고 패션 잡지를 펼치고 요즘 패션은 뭔지, 남자의 멋은 뭔지,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떠드는 걸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카라마츠가 '멋지다'고 정의하는 것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왜 저걸 닮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건, 저딴 것도 좋다꾸나, 따라 하면서 왜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인지! 카라마츠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든든하고 인망 좋은 형님이, 그런 형님이란 완벽한 롤모델이 눈앞에 있는데! 물론 오소마츠 본인도 저게 꽤 양심 없는 발언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허구한 날에 파칭코에 가는 건 물론이요, 거기에다가 경마에서 돈을 탕진하고, 카라마츠의 지갑에도 가끔 돈을 대고, 그러면서 부모의 등골만 쪽쪽 빨며 사는 동정 백수 새끼니까. 이렇게 말하니 딱히 동경할 만한 면모가 없긴 하였다. 그래도, 오소마츠는 육 쌍둥이의 장남이 아니던가! 마츠노 가 유일무이한 카리스마 레전드, 인간 국보를 희망하는 장남이 아니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왜인지 '이상적인 형님'과는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자기 자신이 괜히 얄미워서, 오소마츠는 샐쭉한 표정으로 카라마츠의 말을 가로막았다.

 

    "카라마츠, 근데 말이야…. 너 나, 별로라고 생각하냐?"

 

    카라마츠의 멀뚱멀뚱한 시선이 오소마츠를 바라본다. 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횽아 마음이 너무 아픈데. 아야야, 그런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면 횽아 진심으로 상처받는데! 카라마츠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서 조용히 잡지에 열중했다. 오히려 대놓고 말하지 못했단 게 더 슬펐다. 오소마츠의 입술이 오리 주둥이처럼 비죽 튀어나왔다. 힐끔,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던 카라마츠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허파 깊숙히에서 솟아나온 웃음을 토해내며, 카라마츠는 한껏 멋들어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아, 갈비뼈가 아파졌다.

 

    "농담이다, 오소마츠. 오소마츠는 나와 함께 형제들을 이끄는 two top이 아닌가! 늘 의지하고 있다고, brother?"

 

    흰 치아를 드러내며 그린 미소가 말갛다. 평소 잔뜩 힘을 줘 각진 눈썹이 부드럽게 처져 있었다. 턱을 괴어 살짝 밀어 올려진 뺨이, 그것 때문에 눈가에 지어진 주름이, 겨울의 냉기 때문에 발갛게 물든 얼굴이 오소마츠를 마주했다. 와그작, 그의 안에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감각이 들었다. 다만 평소와는 그 느낌이 좀 달랐다. 꼭 망치로 두드린 것처럼, 카라마츠의 표정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안쪽에서 갈비뼈를 두들겨 팬 것처럼…. 그 범인이 무엇인지 깨닫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심장이 쿵, 쿵, 쿵, 계속하여 그의 갈비뼈를 두드려댔다. 그럴 때마다 찌릿찌릿한 고통이 가슴을 중심으로 자꾸만 퍼져나갔다. 내가 왜 이러지? 오소마츠는 당황하여 속으로 외쳤다. 이러면 꼭 내가, 내가 사랑에라도 빠진 것처럼….

 

    사랑?

 

    카라마츠에게?

 

    말도 안 되지, 카라마츠는 그의 동생이었다. 20년을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집에서, 같은 식탁에서, 같은 요 위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불만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말은 저렇게 해도 사실은 날 좋아하지 않으면서, 날 동경하지 않으면서. 말만 저렇게 하지, 사실 날 은근 깔보고 있으면서? 안 그러면 맨날 매몰차게 대할 이유가 없지, 그럼. 이건 착각이 분명했다. 예상치 못하게 카라마츠가 그를 향해 웃어 보여서, 생각보다 그 미소가 상냥해서, 오늘이 겨울이라 얼굴이 쉽게 빨개져서, 그런 이유 때문에. 어쩌면 그가 이전부터 카라마츠를 좋아했노라고, 다만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는, 그런 고리타분한 답안은 오소마츠에게 닿지도 못했다. 그야, 좋아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는 오소마츠였다! 좋아한다느니, 그런 감정에 얽매일 일 없는 속 편한 인간이었다. 그래, 이건 안도가 분명했다. 나는 제대로 된 형이라는 안도, 동경받을 만한 장남이라는 안도. 살면서 이렇게 요동치고 혼란스러운 안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오소마츠는 애써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켰다. 이 감정은 틀림없는 안도라고.

 

    "근데 말이다,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넌지시 말을 이어나가자, 머릿속에서 작은 전쟁을 벌이던 오소마츠는 화들짝 놀라며 제 동생을 응시했다. 맞아, 카라마츠와 대화 중이었지. 오소마츠의 낯빛이 안 좋아진 걸 눈치챘는지, 카라마츠는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살피고 있었다. 이내 별거 아니라고 넘겼는지 - 동생의 반만큼만 자신에게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오소마츠는 내심 생각했다 -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건가? 어떤 girl에게 차이기라도 했나?"

 

    "아, 아니거든! 횽아 인기 많거든!"

 

    괜히 속내를 들킨 듯한 느낌에 언성이 올라갔다. 카라마츠는 그를 향해 불신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오소마츠에게 인기? 오소마츠에게 여자 친구는 오른손뿐이지 않은가. 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관찰에 도리어 억울함이 앞섰다. 그정도는 아니거든! 물론 맞는다고 하기에도 양심이 아팠지만, 그가 누구였는가. 양심은 취직 의지와 함께 오래전에 내다 버린 오소마츠였다. 턱을 괴며, 그는 입술을 비죽인다.

 

    "너,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카라마츠는 마주 빤히 오소마츠를 마주했다. 오소마츠의 투덜거림이 무색하게 그는 진지해 보였다. 멋져 보이려고, 혹은 착해 보이려고, 인기 많아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카라마츠로서, 그는 오소마츠를 바라본다.

 

    "나만큼 오소마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또 어디 있나?"

 

    반사적으로 반박을 하려 입을 열었으나,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잘 아는 카라마츠, 이 단어에 묘한 만족감이 가슴을 채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을 동경해도 절친은 동경하지 않는다. 연예인은 동경해도 애인을 동경하진 않는다. 누굴 더 잘 아느냐, 물어본다면 단연 절친과 애인일 것이다. 동경의 대상이란, 그 동경하는 면만을 극대화하여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 누군가를 더 자세히 알고, 다가가고, 좋고 나쁜 면을 다 보고 나서야 사람은 깨닫는다. 아, 이 사람을 나는 좋아하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만큼 상대방이 반짝반짝하지 않더라도, 의외의 면모가 있더라도, 그래도 곁에 남고 싶을 만큼. 굳이 자신을 닮지 않아도 괜찮았다. 심장이 다시금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아, 역시 안도일 리가 없었다. 세상에 이리 갈비뼈 아픈 안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오소마츠는 문득 생각한다. 아, 이런 너의 자신감을 닮고 싶어. 그럼 나는 이 심장 속에 요동치는 감정을 제대로 정의할 수 있을까. 너를 닮고 싶어. 더 가까이 다가가고, 널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

 

    "…없지. 너밖에… 없지."

 

    멍하니 중얼거린다. 네가 나를 닮아갔으면 좋겠어, 소소한 질투에서 시작된 투정은 결국 내가 널 닮고 싶다는 욕심으로 끝난다. 그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둘의 색이 뒤섞인다면, 카라마츠의 뺨이 붉게 물들고 오소마츠의 눈가에 새파란 눈물이 차오른다면, 그때 서로에게 다가가는 걸 멈출 수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