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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편

[이치카라] Perfect Fashion

팩좽AU 아이넴 이치마츠 X 마스타카라 카라마츠

뽕 찼다가 급격히 빠져서 짧음. 이치마츠의 일방적인 사랑.


    이치마츠는 막연히 죽고 싶었다. 이미 그의 육체는 죽고 그의 의식만이 형태 없이 부유하며 삶의 착각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양복점이 많은 거지? 그렇게 많은데 왜 카라마츠 마음에 드는 양복은 또 없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이치마츠는 방송에 평소처럼 후드와 모자를 쓰고 나와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공식 석상이니 정말 그렇게 입고 가진 않겠지만, 적당한 양복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달랐다. 이미 자신의 양복은 골랐다면서 한 시간 동안 실컷 자랑을 하더니, 이치마츠의 양복을 보고선 그럴 수 없다고 기함을 토해낸 것이다. 곧바로 거리로 끌려 나가 전전한 양복집만 해도 10군데가 넘었다. 난 이거면 충분한데, 라고 입에 침이 닳도록 말했지만 카라마츠는 단호했다. 안 된다, 이치마츠에게 어울리는 옷은 이게 아니다! 튀지 않고 무난한 양복들에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 게 무엇이 있는지. 이럴 때마다 그는 카라마츠에게 단호하게 거절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평소엔 싫다고 가볍게 말하면서도 꼭 이럴 때만.

    "이치마츠! 이건 어떤가!"

    매장 안을 한참동안 둘러보다가 양팔 가득 양복을 껴안고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욕이 나게 귀여웠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냥 집에 가. 제발 이번에는 카라마츠 마음에 드는 옷이 있길 바라며, 이치마츠는 옷을 받아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한 벌씩 입고 나올 때마다 직원은 감탄사를 남발했다. 와, 고객님 이거 정말 어울리세요. 라인이 살아서~. 그러나 카라마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음, 다음! 옷을 반쯤 입었을 때 이치마츠는 이미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이번 매장도 글렀나 보다. 그냥 내 자신을 카라마츠의 구관인형 쯤으로 생각하며 기적을 바라자. 기계적으로 옷을 입고 벗기를 반복하자 어느새 마지막 양복이 되었다. 안에 흰 셔츠를 받쳐 입는 검은 칼라의 보라색 정장이라니. 맨 정신이라면 절대 입지도 사지도 않을 옷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양복을 입고 탈의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카라마츠의 눈이 반짝였다.

    "이치마츠, 딱 그거다! 너무 잘 어울리는군!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아...!"

    "아아, 그래……. 잠깐, 뭐? 진짜? 이걸로 한다고?"

    다른 무난한 것도 많은데 하필 이걸? 어이없다는 이치마츠의 표정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카라마츠는 직원에게 이미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말릴 새도 없이 이미 옷은 계산되었고, 카라마츠는 어서 다시 옷을 갈아입으라고 이치마츠를 탈의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직원은 양복을 곱게 포장에 이치마츠에게 내밀었고, 그는 멍하게 옷을 받았다. 아무거나 라도 좋으니까 제발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끝나면 분명 인간이 된 피노키오처럼 기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얼떨떨할 뿐이었다. 아무거나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옷을? 지나치게 격식 있고 지나치게 어색한 이 옷을? 애초에 왜 카라마츠가 산 건데. 멍하니 옷을 품에 안고서 그들은 한적한 거리를 걸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밤거리는 한산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양복점의 영업종료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옷을 고른 것 같았다.

    "이제 걱정 없군! 다음 주의 시상식은 perfect할 거다, 이치마츠!"

    "아니, 그냥 거기 후보로서 초청 된 거잖아. 시상하고말고 확정된 건 없는데 왜 그렇게 당당해?"

    "훗……. 우리들의 조합이라면 상은 따 놓은 당상 아니겠나!"

    "하여간에 자신감만 넘쳐요."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시선을 거기에 고정했다. 프로그램의 인기가 나쁘진 않았으니, 아니, 솔직히 말해서 꽤 유행했으니 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긴 했다. 그들은 같은 래퍼 방송에 스카우트되어 만난 사이였다. 대중에게 생소한 랩을 친근하게 만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방송은 정작 랩보다는 각양각색의 래퍼 6명 사이의 개그와 관계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때만 해도 아이넴과 마스타 카라로 만났는데, 서로 본명을 부르며 양복을 사주는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게다가 상대방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운명적인 사랑을 쫓으며 실제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데 혼자 바라보며 자학하는 사랑을 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지. 카라마츠에게 이치마츠는 좀 친한 동료 래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눈을 찔러 눈물이 살짝 났다. 앞머리를 정리하는 척 눈물을 닦고서 옆을 보자 팔짱을 끼고서 잔뜩 움츠러든 카라마츠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은 꽤 쌀쌀한 편이었다. 이치마츠의 평범한 양복을 보자마자 뭘 걸칠 새도 없이 끌고나왔기에 카라마츠는 재킷을 걸치지 않은 채였다. 그건 이치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온 오후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보내니 이제야 갑작스러운 한기가 느껴졌다.

    이건 흑심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건 절대 흑심이 아니다. 평범한 호의를 보이다 보니 어쩌다가 나한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뿐이다. 일부러 시선은 거리에 다시 고정하며, 그는 손을 뻗어 카라마츠를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어, 놀란 소리를 내면서도 그대로 끌려와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싫어서 버텼으면 오히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 쪽으로 넘어지는 꼴이 되었을 게 뻔했다. 카라마츠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모르는 척 하며, 그는 최대한 무심하게 말을 내뱉는다.

    "춥잖아, 좀 붙어. 네 말마따나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뭐라 그리 급하다고 재킷 걸칠 시간도 없이 나왔냐."

    "하지만, 이치마츠가 perfect 패션도 없이 시상식에 나가겠다는데……!"

    "예예, 그러니까 아직 상 받을 거 확정난 거 아니고요."

    걸을 때마다 살갗이 스치는 부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추우니까 손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했으나 그에겐 이런 긴밀한 거리도 나름 큰 용기를 낸 셈이었다. 빠르게 포기하며 그는 품 안의 양복을 좀 더 그러쥔다. 추위 때문일까, 귀가 유난히 붉게 물들었다.

    평소 답지 않은 패션으로 시상식 때 뉴스의 1면을 장식한 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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